사랑 - 박형준 / , 창비 / 2002년 04월 -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 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있다. 산 너머로 뒤늦게 날아온 한 떼의 오리들이 붉게 물든 날개를 호수에 처박았다. 들풀보다 낮게 흔들리는 그녀의 맨발, 두 다리를 맞부딪히면 새처럼 날아갈 것 같기만 한. 해가 지는 속도보다 빨리 어둠이 깔리는 풀밭. 벗은 맨발을 하늘에 띄우고 흔들리는 흰 풀꽃들, 나는 가만히 어둠속에서 날개를 퍼득여 오리처럼 한번 날아보고 싶다.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 오래 전에 나는 그녀의 눈 속에 힘겹게 떠 있었으나. 장롱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