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이병률 / 창비 / 2006년 11월 -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 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만하면 받치고 굳을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정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 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바람의 사생활 - 이병률 / 창비 / 2006년 11월 - 가을은 차고 물도 차다 둥글고 가혹한 방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그림자가 어기적어기적 나뭇잎을 뜯어먹고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