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19

<이재무> 제부도 / 팽나무쓰러지셨다 / 겨울숲에서

제부도 - 이재무 / bookin(북인) / 2008년 08월 -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듯, 그러나 닿지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 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나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하루에 두 번 바다가 가슴을 열고 닫는 곳 제부도에는 사랑의 오작교가 있다네 팽나무 쓰러, 지셨다 - 이재무 -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키 3m에 300㎏… 中 거대 유인원은 왜 멸종했나

키 3m에 300㎏… 中 거대 유인원은 왜 멸종했나 “환경 변화 적응 못 해 먹이 다양성 감소”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입력 2024.01.11. 10:18업데이트 2024.01.11. 13:13 과거 중국 지역에 살았던 초거대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Gigantopithecus blacki)가 쉬고 있는 모습의 상상도. /호주 서던크로스대 지금으로부터 200여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점보다 훨씬 과거인 그때 중국 남부에는 거대한 몸집의 유인원이 살았다. 키는 3m에 육박했으며 몸무게는 최대 300㎏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는 그들을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Gigantopithecus blacki)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멸종 시기는 정..

20[sr]인류진화 2024.01.11

<문정희> 남편 / 응 / 순간

남편 - 문정희 / 민음사 / 2004년 05월 -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응 - 문정희 / 민음사 / 2004년 05월 - 햇빛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문태준> 백년 / 어느날내가이곳에서가을강처럼 / 빈집의약속

백년(百年) - 문태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07월 -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어느 날..

<최소월 / 라혜석> 보월 / 밸지엄의용사 / 긴숙시 / 출산의고통

步月 - 崔素月 - 나를 생각하는 나의 님 這(저)구름 나를 생각 차츰차츰 건일며(거닐며) 這(저)달에 나를 빗최려(비추려) 徽笑(휘소:아름다운 미소)로 울어러봄에(우러러보며) 검음으로 애를 태우고 누름으로 나를 울니라.(울리니라) 빽빽한 運命(운명)의 줄에 에워싸인 나를 우는 나의 님 따듯한(따뜻한) 품속에 나를 갖추려(감추려) 그 깁흔(깊은) 솔밧(솔밭)으로 오르리라 총에 맞은 병사 / 로버트 카파 벨지엄의 勇士 - 崔素月 / 제2호, 1914. 11. 3 - 山嶽이라도 뻐개지는 大砲의 彈알에 너의 阿只(아지, 아기)는 벌써 碎骨이 되었고 野獸보다도 暴惡(포악)한 게르만의 戰士에게 너의 愛妻는 恥辱으로 죽었다 인제는 사랑하던 家族도 없어졌고 너조차 逃亡할 길을 잃어 버렸다 배 불러도 더 찾는 慾心꾸러..

<이병률> 사랑의역사 / 바람의사생활 / 봉인된지도

사랑의 역사 - 이병률 / 창비 / 2006년 11월 -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 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만하면 받치고 굳을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정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 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바람의 사생활 - 이병률 / 창비 / 2006년 11월 - 가을은 차고 물도 차다 둥글고 가혹한 방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그림자가 어기적어기적 나뭇잎을 뜯어먹고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

은행식물원 ⑥겨울 수목원 풍경(24/01/04, Any Dream Will Do)

요즈음 – 은행식물원 ⑥겨울 수목원 풍경 – 아팠던 지난 흔적 말라버린 언덕위의 溫室에 피어나는 溫情은 따스한데 여전히 삐딱扇 타고 불어대는 칼바람 배달9221/개천5922/단기4357/서기2024/01/04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은행식물원 ⑥겨울 수목원 풍경 (1) 아픔을 주었고 나의 걸음을 붙잡았던 2023은 가고 힘을 얻어보려 2024의 얕은 언덕에 올라 싱그럽게 살아가는 작은 온실에서 기쁨의 한자락 얻다. 그리고 금새 편석촌과 이상과 백석의 숨결에 파묻혀 보다. (2) 혼돈의 시계 속 한반도. 그리고 전쟁의 회오리로 휩쓸린 세계지도. 巨惡이 활개치는 세상은 언제 종언을 고할 것인가? 괴수의 뒤를 따르는 이해할 수 없는 무리들 어딜 향해 주르르 몰려가나? 배달9221/개천5922/단기435..

<남진우> 어느사랑의기록 / 처형 / 별똥별

어느 사랑의 기록 - 남진우 / 시집『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학과지성사, 1996) - 사랑하고 싶을 때 내 몸엔 가시가 돋아난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은빛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껴안는 사람을 찌른다 가시 돋힌 혀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핥고 가시 돋힌 손으로 부드럽게 가슴을 쓰다듬는 것은 그녀의 온몸에 피의 문신을 새기는 일 가시에 둘러싸인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다만 죽이며 죽어간다 이 참혹한 사랑 속에서 사랑의 외침 속에서 내 몸의 가시는 단련되고 가시 끝에 맺힌 핏방울은 더욱 선연해진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저 반란의 가시들 목마른 입을 기울여 샘을 찾을 때 가시는 더욱 예리해진다 가시가 사랑하는 이의 살갗을 찢고 끝내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때 거세게 폭발하는 태양의 흑점들 사..

<김종해> 바람부는날 / 항해일지 / 그대앞에봄이있다

바람부는 날 - 김종해 / 글빛 / 2004년 05월 -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 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 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운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항해 일지 1 - 무인도를 위하여 - 김종해 / (1984) - 을지로에서 노를 젓다가 잠시 멈추다. ..